[알람이 울렸다. 눈이 반짝 떠진다. 어제 오후 내리 훈련을 하고도 몸이 가벼웠다. 오히려 푹 잔 느낌이었다. 기지개를 켜며 도착한 욕실에서 휘릭 몸을 닦는다. 도중에 수전을 잘못 친 탓에 뜨거운 물세례를 받았지만, 숨을 들이켰을 뿐 화상은 입지 않았다. 교복으로 갈아입곤 부엌으로 향한다.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가족과 아침 인사를 나눴다. 식기가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일상적인 대화가 섞인다. 오늘은 언제쯤 들어와? 점보랑 남아서 연습할 테니까 아마…]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풀리지 않은 피로가 근육을 잡아끌어서,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난다. 림솔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슬슬 바닥이 찾으러 올 거라 알린다. 설계소 소장이 점보를 깨우는 동안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그제야 잠이 물러난다. 작업복을 찾아 팔을 꿰기 시작했다. 어깨가 조금 결리는 듯해 이번 교대가 끝나면 화타에게 봐달라고 할까 싶었다. 일하러 가기 전에 치료가 끝나야 할 텐데.
[수업 종이 울리자마자 가방을 싸 들고 야구부실로 향한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점보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어제보다 높게 한 번, 아니면 커브를, 오랜만에 마구를?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몸이 근질거려 점보를 재촉한다.]
생각보다 작업이 늦게 끝난 터라 곧장 히터를 찾아간다. 새벽 공기가 선선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속이 빈 게 흠이었지만 익숙하여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은 얼마짜리가 있으려나. 이번 달 이자도 빠듯하게 내겠거니 생각하며 알루미늄 배트를 빙그르르 돌렸다.
[뻐근한 몸을 늘리다 벌러덩 뒤로 나자빠진다. 내내 쪼그려 앉아 있었기에 무릎이 불편했다. 그래도 웃음이 나온다. 물들어가는 노을을 반달 모양으로 휜 눈이 바라본다. 길게 감상하지 않고 몸을 일으킨다. 기다리던 자율 연습의 시간이었다.]
피가 눈에 튀어 들어간다. 얼굴을 찡그리곤 다시 배트를 내리친다. 부들대던 놈의 손이 멈췄다. 그제야 손목으로 눈을 비빈다. 비비면 안 좋겠지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따끔거리는 눈을 꾹 감아버리고 땡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부러라도 밝은 목소리를 낸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연습을 갈무리 짓는다. 진이 빠져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감싸 안는다. 당황해서 몸을 굳히자 익숙한 목소리가 반갑게 인사한다. ○○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으려니 반응이 재밌다는 듯 웃어 재낀다. 때리기라도 했다면 어쩔 거냐 아옹다옹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잠시 후 도착한 땡전과 시덥잖은 말을 나눈다. 입금을 확인하곤 손을 팔랑거리며 발을 옮기는데, 뒤쪽에서 소란이 인다. 거의 동시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곧바로 빼 들은 배트가 총알을 튕겨냈다. 나머지 한 발이 볼을 긁고 지나간다. 제압당한 3천만원짜리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분명 머리통을 깨놨는데 잘도 움직이네. 손등으로 피를 훔치는데 닦아내기 무섭게 또다시 흘러내린다. 땡전이 상처를 보려는 듯 손을 뻗어와서, 괜찮다며 몸을 뺐다. 점보에게 가자고 눈짓을 한다. 등 뒤로 다음에 보자 인사를 던졌다.
[유니폼을 빨아 널곤 든든하게 저녁을 먹었다. 가위바위보를 이긴 덕분에 오늘의 설거지는 ○○의 몫이었다. 이를 닦으며 오늘의 훈련을 되돌아본다. 잘된 점, 부족한 점, 개선해야 할 점. 머릿속에 정리해둔다. 시합 영상을 돌려보다 침대에 몸을 뉘였다. 내일은 오늘보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요일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날이었다. 이불에 뺨을 비볐다. 눈꺼풀이 점차 감겼다.]
비돌에 도착해 화타를 찾아갔다. 볼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꿰매야겠다며 준비를 한다. 의자에 몸을 묻고 여즉 따끔거리는 눈을 감았다. 의료도구가 든 서랍장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배경으로 수마에 덮쳐진다.
*
[이튿날, 지상이 무너졌다.]
지옥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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