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었다.
언제나 지옥이었다.
끼니를 챙기는 동안에도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도 내리 지옥이었다. 아이가 울면 달래는 게 아니라 입을 막아야 하는 세상이었다. 살아남은 자는 죄 죄인이었기에 선악의 구별이 무뎌졌다. 누군가가 죽어서 다른 이가 살아남았고, 다른 이를 죽여서 누군가가 살아남았다. 혼란의 파랑이 한차례 쓸고 지나가자 지상엔 강한 녀석들만이 서 있었다. 머리에 엉겨 붙어 항시 흘러내리는 피의 주인을 구분할 수 없었다.
*
불현듯 의문한 적이 있다.
제 친구들도 살인을 해봤을까?
꼬리를 물고 그럼, 안 해봤겠냐? 하고 저가 스스로를 비꼰다. 고개만 돌려 진수를 쳐다봤다. 금방 눈치채고 얼굴을 마주한 진수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까지 눈을 두다, 앞을 걸어가는 럭키에게 시선을 옮겼다.
사람을, 죽여봤을까? 등을 타고 내려간 시선이 투박한 손에 머물렀다. 전 국가대표 권투선수에 키즈. 맨손으로 사람 하나 묻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터였다. 지킬 동생도 있었으니... 아니, 동생이 있으니 오히려 목숨까지 앗지는 않았으려나. 다 차치하고도 무른 녀석이었다. 초주검은 만들어도 상대의 맥까지 재가며 마무리 지을 성격은 못 되었다. 맥을 잴 줄은 알려나. 큭큭 웃자 놀림 받은 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봐온다. 움찔 어깨를 튀곤 씰룩대는 입꼬리를 눌러내렸다.
"뭐 했냐."
"뭐? 아무것도 안 했어!"
미덥지 않은지 뒤편의 진수와 점보를 한 번씩 일별하고서야 도로 몸을 돌린다. 하여간 순진했다. 덕분에 놀리는 맛이 있는 놈이다. 배트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지옥에서 살아남아 제 옆에 있었다. 강해진 녀석이었다. 풀어졌던 얼굴에서 조금씩 웃음기가 가라앉아갔다. 묻고 싶진 않았다. 그냥, 그 정도로 궁금하진 않았다.
*
어깨가 불타는 듯 뜨거웠다. 선혈에 옷이 적셔 들어 축축했다. 속이 뒤틀렸다. 피 냄새가 이렇게 강한 날은 누군가 죽었다. 반드시 죽었다. 그게 저인지 제가 연신 말을 거는 이인지 판별이 서질 않았다. 급격히 꺼져가는 심음을 붙잡았다. 끌어안았다. 그러나 갈라져 빠져나갔다.
한번 부정한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죽지 않았을 거라 실낱같은 희망을 쥔다. 곧 일어날 거라고. 아, 하지만. 익히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피비린내가 사위에 가득했다. 멈추지 않는 사고가 팔에 가둔 몸이 어찌 될 지 이해시켜 버린다.
다시 부정한다. 피와 눈물이 섞여 났다. 비명인지 울음인지 소리가 터졌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익숙해서 모른 척하지 못했다. 지옥에선 온갖 어두운 것이 흔했다. 죽음이 그랬다.
그저 울부짖는데 어깨 너머로 진수가 보내주자 말을 건넨다. 목소리에 슬픔이 배어났다. 지옥에선 부딪혀오는 풍파를 받아치기에 급급해 작별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으나, 이번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리 한 사람 몫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치고 있다 해도 이리 무거울 순 없었다. 두 팔을 떼어내면 그대로 덮쳐와 눌려 죽을 성싶었다. 진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꾹꾹 눌러 담은 말투였다.
"그 녀석도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을 거야."
꺽꺽대던 숨을 고른다. 곱게 죽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너무 아프고 급하게 떠난 건 아니냐. 한날한시에 죽자 지켜질 리 없는 약조라도 받아 놨어야 네가 몸을 사렸을까. 그래 봐야 지금 늘어진 게 자신이 됐을 뿐이었겠지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뭐든 그만두고 싶었다. 생각이 짓무른 입술 사이로 그대로 흘러나갔다.
타의로 깊은 숲을 빠져나가는 동안, 속으로 럭키가 아무도 죽이지 않았기를 염원했다. 지옥에서 지옥으로 가는 일만 없었으면 했다. 죽으면 끝이라 믿건만 네가 이리도 나를 바꾼다. 품에서 속절없이 온도를 잃어가는 송장을 더욱 끌어안아 자신의 체온으로 덥힌다. 자잘한 나쁜 짓은 괜찮겠지. 우리가 그리 악질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은 살아 돌아가도 지옥이고 이곳에서 죽어도 필시 지옥이니 다신 만날 수 없을 터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벗어났으면 한다.
지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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