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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뱃] 未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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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eolsi 2023. 11. 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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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52 배트맨 Vol.3 가족의 죽음 기반





 남자가 동굴에 들었다. 작업의 막바지에 접어들어 엉거주춤 일어선 채로 배트컴퓨터를 조작하던 팀은 괘종시계의 뒷면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평상복 차림의 브루스가, 알프레드에게서 받아올 법한 트레이도 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검붉은 실크 셔츠와 대조되어 더욱 희게 빛나는 얼굴과 시선이 닿았다. 색이 연한 눈동자에 그림자가 스며들어 어두웠다. 팀은 눈짓으로만 인사를 나눈 후, 자료를 업로드하고 있는 화면 하단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해가 막 기울기 시작했을 이른 저녁이었다. 배트맨이 어두컴컴한 하늘을 가를 시간은 아니었다. 브루스는 관찰하는 시선을 숨기지 않으며 팀을 중심으로 커다랗게 반원을 그렸다. 구두 소리는 팀의 등 뒤에서 멈췄다. 그 이상은 차량을 둘러보는 기척도, 동굴 도처에 위치한 창고 혹은 금고로 향하는 걸음도 없었다. 방대한 양의 자료가 전송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을 잃은 의식이 그에게로 쏠렸다. 일중독 천재의 뇌는 따로 휴식시간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았다. 브루스는 목적없이 떠돌아다닐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슈퍼 컴퓨터가 필요하다면 동굴에 발들이면서 말부터 꺼냈을 텐데. 명석한 머리로 무수한 가설을 떠올리고 지워나간다. 어쩌면 자신을 보러 온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팀은 무심코 얼굴로 올라온 손의 궤도를 바꿔 머리칼을 쓸었다. 화면에 완료를 알리는 확인창이 떴다. 그가 지금도 뒤편에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지만, 팀은 무안해질 것을 각오하고 입을 열었다.

"전 괜찮아요."

 브루스는 그렇게 말하는 팀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날개를 닮은 망토, 매끈하게 광이 나는 신발코를 찬찬히 눈에 담고서, 시선은 다시 아이의 머리와 어깨 언저리에 머물렀다. 아이들의 얼굴에 피투성이 붕대가 감겨 있을 때, 그 참혹한 광경에서 눈을 떼고 싶다는 충동과 혐오스러운 숙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눈에 핏발이 서도록 조커를 노려볼 동안, 팀의 모습만큼은 확실히 눈에 담았었다. 조커가 감히 아이의 어깨에, 얼굴에 닿았기 때문이다. 광인의 손이 아이의 몸 위를 쏘다니는 꼴을 바라만 보고 있던 순간을 곱씹자, 늘 묵직하게 안정되어 있는 심장박동이 어긋났다. 그는 분노 속에 불안이 섞여있음을 깨닫고 박쥐가 자리를 비운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삐걱대기 시작한 정신을 붙들어 놓아야 했다. 브루스는 분할되지 않는 자아 사이에서 겹쳐진 가족을 향한 사랑을 움켜쥐었다. 견고한 장벽의 균열을 타고 감정이 울걱 샘솟았다.

 팀은 브루스가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지만, 그의 보폭을 고려하자면 오히려 느린 편이었다. 팀은 누르지 않을 자판을 괜히 손가락으로 쓸었다. 최근 일로 그와 조금 서먹해진 느낌이었다. 그가 어떤 말을 꺼내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의심이 고개를 쳐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를 믿지 못하는 자신이 실망스러웠고, 상황을 이렇게 만든 그가 원망스러웠으며, 그의 탓으로 돌리는 자신 또한 조커의 손에 놀아나는 것 같았다. 저녁은 먹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하면 너무 티 나려나. 독립한 모두는-제이슨도 인정한다-언제나 알프레드의 음식에 굶주려 있으니까. 오랜 시간 컴퓨터의 인공적인 빛에 노출된 탓에 뻑뻑한 눈을 감고서, 이곳을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고있을 때였다.

"뭐, 어?"

 다부진 팔이 팀의 목과 어깨를 둘러안았다. 딱 좋을 정도의 압박감과 그에 따른 안정감이, 목을 조르려 드는 줄 알고 방어하려던 동작에 제동을 걸었다.

"브루스?"

 그의 얼굴이 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 팀은 까무러치게 놀랐다. 조각상처럼 잘 깎인 남자의 뺨에 입술이 닿았기 때문이다. 재빠르게 원위치로 돌아온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팀은 불에 쬐인 것처럼 온몸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근육량을 생각하더라도 브루스가 훨씬 더 체온이 높을 텐데, 그는 밤바람처럼 시원했다. 무릎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단단한 팔에 감싸여 꼴사납게 비틀거리지 않을 수 있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을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채워갔다. 박쥐가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건가, 그런 의문이 떠오른 후에야 팀은 자신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위험하고, 어쩌면 아까운 짓이었다. 팀은 신중히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렸다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뒤돌아 가버릴 사람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대화하고 싶어보이지는 않는데. '괜찮아요?' 왜 이러냐고 눈치 주는 것 같고. '알프레드를 부를까요?' 최악의 아이디어야. 식은땀이 났다. 팀은 목에 둘러진 팔을 꼭 쥐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브루스...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브루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 가까이서 머리카락과 옷이 서로 쓸리는 소리가 났다. 손바닥 아래서 느껴지는 팔뚝에서 움직일 조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팀은 손을 내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의 팔에 숨이 닿지 않도록 조심히.

 품 안에서 어깨가 팽창했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바짝 힘이 들어갔던 척추는 하나하나 풀어지고 있었지만, 갈비뼈 부근에서 느껴지는 팀의 심장은 여전히 불필요할 정도로 세차게 뛰고 있었다. 그 고동이 거부당할 것에 대비하던 브루스를 누그러뜨렸다.
 브루스는 자식들과 굉장히 복잡한 관계와 감정을 나누고 있었다. 자신이 배트맨이고 아이들이 사이드킥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범죄투사의 길은 언제나 험난했기 때문에,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순간 날을 세우고 있어야했으며 편집증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관계는 대부분 그가 망쳤고, 아이들이 수복시켰다. 그의 정신세계는 타인에게 유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함께 있어주는 이들이 흔히 말하는 가족과 같다고, 고아는 생각했다.
 브루스는 곁눈으로 팀을 엿봤다. 노련한 탐정의 눈은 소년티가 남아있는 얼굴에서 미세한 홍조를 잡아냈다. 단순히 포옹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볼을 스치고 간 마르고 부드러운 살갗 때문이라는 추리가 뒤따랐다. 스킨십에 익숙해질만큼 익숙해진 고담의 황태자와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새삼스레 제 세번째 파트너의 나이를 헤아려본 브루스는 아이를 귀여워하는 마음이 한층 커졌다. 소매로 가려진 입가에 달곰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그 어떤 미인들의 입술이 내려앉았을 때보다 마음이 채워졌지만, 상대에게 의도가 없었음으로 알맹이는 제멋대로인 기대였다. 브루스는 그러한 공허한 애정을 잘 알았다. 그게 가슴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다. 그는 순수한 기쁨을 느낄만할 요령이 없는 사람이었고, 꽤 자주 자신의 추한 인간적 면모를 잘라내고 싶어했다.

 브루스는 팀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자신의 손등에 건조한 입술을 댔다. 사실은 아이의 이마에, 코와 볼에 입 맞춰주고 싶었지만, 역겨운 어릿광대가 아이에게 닿아 불쾌한 만큼 그 자신도 아이와 멀리 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은 복수요, 어둠이었다. 미친 말이었지만 사실이었으며, 미쳤다는 말도 정답이었다. 미차광이들의 뇌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어서, 마찬가지로 미쳐있었다. 아이들을 이 위험한 길로 끌어들인 주제에 애정까지 요구할 뻔뻔함은 없었다. 그렇지만 팀은 스스로 배트맨에게 다가와준 사람이었다. 처음도 그러했으며, 언제나 그래왔다. 브루스는 눈을 감았다. 아이들은 곧잘 서로를 비교했지만,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대체불가능한 존재였다. 모두가 자신에게 속해 있었다. 자신이 있어서 그들이 탄생했으나, 이제 그들이 자신을 존립시켰다. 기둥이 사라진다면 제아무리 철옹성 같은 요새일지언정 무너져내린다.

 언제나처럼, 두려움을 내보이면 안 됐다. 그는 애정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도저히 없앨 수가 없었기에, 들키지 않도록 망토자락 아래에 담아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브루스는 다음번에 짐과 만나면 가르침을 받아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를 머릿속에서나마 중얼거리며, 팀을 놓아주었다. 슬슬 알프레드가 피로연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는지 확인하러 올 시간이었다.

"쉬어가며 하렴."

 브루스가 할 말은 아니라며 신랄한 말을 쏘아붙이지도 못한 채, 팀은 네하고 짧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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