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의 보초를 서는 일, 이상한 놈들이 안 나타났을 땐 꽤 정적이더라고요. 잡담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순간이 오면 다들 약속한 듯이 비돌을 내려다봐요. 따뜻한 빛이 새어 나오는 지하를.
이상향이라 들었어요.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인간의 추악함을 더 보지 않아도 되는 곳. 믿고 싶어서 믿었어요. 맹목적으로 찾아왔어요.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도 깨달았을 텐데. 누군가의 피가, 목숨이 담겼을 거라고.
대피소의 사람들, 제가 데려온 사람들이 죽은 게 제 탓이라 들었을 때, 마땅히 받아칠 말이 없었어요. 곧바로 든 죄책감에 칼날에 목을 내어주기도 했고요. 그 뒤로도 가끔, 우습지만 사색에 잠기게 됐어요. 대부분 형 생각으로 흐르지만요. 형은 비돌을 세우리라 마음먹고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꼈나요? 사람들을 이끌다 잃어도 봤겠죠? 뭐가 형을 움직이게 하고 있나요? 알량한 정의감만으론 지킬 수 없었어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해치는 일에, 형도 괴리감을 느낀 적이 있나요?
비돌에서 형도 살아가겠죠?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이지만, 쉽사리 의심이 사그라들지 않아요. 형님 소리도 불편해하는데 사람들의 추앙을 버틸 수 있을지. 도망가버리는 모습이 눈에 훤해요.
이곳이 형의 이상향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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