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천] 꺼풀
유쾌하게 웃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만신창이 꼴인 땡전에게 삿대질해가며 낄낄대던 천둥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고도 수습이 안 되는지 몇 번이고 헛기침을 뱉고서야 제대로 마주하여 죽 훑어 내린다. 이내 흡족한 미소가 만면에 퍼졌다. 잘생겼네. 방독면 한번을 안 벗기에 무엇을 감추는지 별의별 상상을 다 했던 지난날의 자신에게 손수건을 흔들어주었다. 핏줄 힘줄 죄다 세워가며 부득부득 참아주던 녀석이 제 웃음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기어코 으르렁거리자, 찔릴 듯이 날카로운 이가 두드러졌다. 동그래진 눈이 한곳에 고정되자 아차 싶었는지 턱 다문다.
"너 무슨 종인지 물어봐도 되냐?"
평소와 같이 당돌한 녀석을 보며 의미 없이 치열을 훑었다. 종 따위로 귀천을 나누는 건 옛날이야기라 여겼으나, 밝혔을 때 흐르는 그 묘한 기류는 제 성깔을 건들기 충분했다. 자신 같은 파충류 수인을 꺼리는 사람은 쌔고 쌨으니까. 그런 일로 자존감이 깎일 인물은 아니었지만, 한심하게 뒤에서 숙덕거릴 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뜸이 길어지자 천둥이 머쓱하게 시선을 돌렸다.
"말 안 해줘도 되고. 난 새 수인이야."
순간 굼틀거린 미간을 놓치지 않은 천둥은 입꼬리를 잡아 내리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땡전이라면 미끼를 물것이라 의심치 않았기에.
그걸 또 홀랑 말해버리네. 슬슬 담배 생각이 났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는 특성을 무기로 쓰는 놈들도 있다지만 이건 뭘 믿고 밝히는지 어이가 없었다. 자신도 망설이는데. 사고가 단순하게 꼬리를 물자 눈썹이 삐딱해진다.
"뱀."
눈빛을 마주했다. 답지 않게 후회하려는 마음을 막았다. 차라리 이걸로,
"그래?"
훅 가까워지는 천둥에 무심코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독도 있어?"
노골적인 관심 탓인지 의도 모를 질문 탓인지 아주 찌푸려졌으나 천둥은 개의치 않았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진즉 날아가 있겠지만 이 자식은 날 꽤 마음에 들어 하니까. 천진스러워 보이도록 웃어준다. 안도감 비스름한 것이 떠오른 땡전이 괜시리 위협조로 농을 던졌다.
"왜, 한번 물려보게?"
"내가 왜? 깜찍한 위력이기라도 하신가?"
우스갯소리를 들었다는 양 반문하자 두 눈이 사선으로 쏠려 올라갔다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물린 놈은 죽었지?"
"근데 물리겠냐!"
"그럼 관심 갖지 마 인마."
삐끗 웃음기가 사라졌다 다시 번지는 홍안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얘는 어쩌다가, 싹을 밟지 못하는 자신은 왜. 고개를 비스듬히 내려 붕대 감긴 몸뚱이를 눈에 담았다. 능숙하지 않은 면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이 녀석에게는 더. 오룡이 있는 제 뒤쪽을 턱짓한다.
"이거나 빨리 데려가."
"그래."
목발에 기대 비켜서는데, 시선이 따라붙어 눈썹 한쪽을 휘었다.
"왜?"
"방독면 벗고 다니지 그래?"
허, 하고 금일 처음으로 웃은 땡전이 빈정거렸다.
"송곳니 안 보여?"
"보이는데."
입가가 점차 잦아든다. 땡전은 강했기에 말에 익숙하지 않았다. 무형의 것을 말로써 형태 잡는 일에 서툴렀다. 때문에 말문이 막히고서야 자신에게 있어 그 막幕이 무슨 의미인가 고찰한다. 과정에 새가 날아들었다.
“럭키!”
목청 돋워 부르자 함께 있던 진수와 점보도 고갤 든다. 몸만 돌려 용건을 묻는 럭키에게 까딱까딱 손가락질하자 투덜대면서도 다가온다. 가까워진 녀석의 볼을 돌연히 죽 잡아당기자 드러난 송곳니가 땡전 못지않게 뾰족했다. 뭐하냐며 인상을 쓴 럭키를 두고 땡전과 시선을 맞댔다.
“봐봐, 얘도 이런데. 진수 것도 보여줄까?”
뱀의 눈은 럭키의 얼굴을 감싼 손으로 가 있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언행에 눈을 가늘게 뜨자, 열 받게도 무시하듯 안쓰럽다는 낯빛을 한 천둥이 제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썰린 상처 탓에 예민해진 피부감각이 눈길을 이끌었다. 갈색 가죽 장갑으로, 노출된 손목으로, 이어진 팔을 타고 올라가 상대의 얼굴로 닿는다. 말간 눈이 꼬리를 빼고 휘어있었다.
“잘생긴 얼굴 가리지 말라고. 아깝게.”
간다! 쾌활하게 등을 돌린 천둥을 멀거니 바라봤다. 또 돈이 궁한가? 저런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는 녀석이 아닌데. 의미 없이 기억을 더듬는다. 뒷목에 몰리는 열을 무시했다.
*
정장 재킷에 팔을 꿰고 옷걸이에 걸린 방독면을 집었다가, 멈칫 멈춰 섰다. 잠시 사무실 유리창에 비치는 형상에 초점을 맞춘다. 입을 열기 무섭게 송곳니가 허옇게 빛을 발하기에 두어 번 깜빡이다 얼굴의 넓은 살로 눈을 옮겼다. 시선 닿는 곳부터 비늘로 뒤덮여가 검게 윤이 나는 부분이 귀까지 퍼졌다. 익숙한 방독면을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거추장스러웠던데다 슬슬 전자담배로 갈아탈 생각이라 쓰고 피기도 귀찮을 테고...
던지듯 걸어두고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