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

[신도림 전력/땡천] 눈을 감으면

myeolsi 2020. 9. 5. 22:41

부작용이라 했다. 이유 모를 갈증에 밤을 지새우고 나뒹구는 시체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에 눈이 돌아간 날에, 한참 구역질을 하다 입이며 셔츠며 피 칠갑을 하고 연구소를 찾아간 날에 그리 들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평소의 배는 날카로워진 어성에 주춤거리던 상대가 주기적으로 섭취하면 된다 한다. 혈액을. 얻기 까다로웠지만 아예 구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던 터라 큰 문제는 없었지만… 어지러워서 눈을 감았다가, 피 냄새가 더 선명해지기에 도로 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비상등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터널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가, 제게 기대앉은 천둥으로 향한다. 목이 말라와 바싹 마른 입술을 느리게 핥았다. 속에 입은 반팔이 붉어진 것을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내리자, 두꺼운 수갑이 서로의 손목을 붙들고 있는 게 보인다. 절그럭 들어 올렸다가 천둥이 팔이 끌려오기에 곧 내려놓았다. 그 이상한 주사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쯤은, 자꾸만 미끄러지는 눈꺼풀에 힘을 줬다. 알코올과는 다른 느낌으로 제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는 게 불만스럽기 짝이 없어 미간을 찌푸리곤 천둥을 흔들어 깨웠다. 예상했던 대로 기절에서 잠으로 넘어갔는지 입속으로 으음 소리나 내다 느리게 눈을 뜬다. 제 체온으로 덥혀진 어깨에서 머리통을 떼곤 두리번거린다. 먼지가 부유하는 통로를, 막힌 천장을, 묶인 손목을. 마지막으로 땡전의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표정이 복잡해진다.

“잡혔냐?”
“묶어 두고 튄 거지.”

씨… 작게 욕을 뇌까리곤 일어나는데 한쪽 팔이 묵직해 휘청인다. 근육이 당겨지며 반대쪽 어깨가 욱신거리는 게 찢어졌구나 깨닫는다. 깨워 놓고 꿈쩍도 안 하는 놈을 보고 눈썹을 휜다.

“뭐해, 안 가?”

드물게 침묵하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진짜 왜 이래, 다치기라도 했나 기웃거리자 턱 얼굴을 잡혀 치워진다. 유쾌하지 않은 감각에 핏대가 선다.

“안 가냐고!”
“기다려봐 새끼야…”

힘겹게 일어서는가 싶더니 휘청 엎어지는 걸 반사적으로 붙잡는다. 이쯤 되니 당혹스러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당했냐?”

훅 가까워진 피 내음에 몸이 굳는다. 대꾸도 못 하고 침이나 꼴딱 삼키는데 일으켜 세우려는지 움직거린다. 덕분에 드러난 상처에 눈길이 가기에 아예 감아버린다. 그러니 냄새가, 뜨자니 상처가. 돌겠어서 밀어내려니 수갑이… 엿 같은 상황에 헛웃음을 짓곤 이판사판이다 말문을 열었다.

“야… 나 슬슬 약발도 떨어지고, 움직일 수 있을 것 같거든.”

증명하듯 위팔을 강하게 움켜쥔다. 그게 떨리는 듯해 안색을 살피자 흉흉한 안광이 돌아와 흠칫 놀란다.

“그럼 더 기다렸다 가든가.”
“한 모금만 하게 해줘.”
“뭐?”
“피 한 모금만. 아니 두 모금만. 목말라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고.”

제정신이 아니구나 눈을 좁히는데 어깨를 힐끔대며 짓씹듯 내뱉는다. 억눌린 말투가 낯서니 긴장하게 한다.

“그런 체질이야. 키즈가 된 부작용인가 뭔가. 많이 안 먹어도 되니까 목만 축이게. 어?”
“…키즈화에 그런 영향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없는데. 약 기운이 덜 가신 거냐? 평소에 그런 망상해본 적 없는지 잘 생각해 봐.”
“그런 약이 아니… 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놈 끌고 돌아다니기 싫잖아.”

일축하려다 이미 결심한 눈빛을 마주하곤 입을 일자로 한다. 앞일이 훤히 보여 놓친 새끼들 잡으면 늘씬 패주겠다 다짐했다.

“날붙이도 없잖아. 어떻게 하게.”
“된다는 거지?”

엄습하는 무게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뒤로 넘어간다. 뒤통수를 부딪치겠거니 눈을 질끈 감았는데 넓은 손이 감싸 들어 허공에서 멈춘다. 곧바로 옷을 끌어내려 혀를 대는데 맨살에 닿는 날숨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넘어지지 않으려 등에 두른 팔이 움찔 떨리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라붙은 피를 핥다가, 이를 세워 아득 문다. 빠르게 퍼지는 통증에 얼굴을 와락 찡그리고 주먹으로 등을 쳤다. 입술이, 혀가 상처를 휘저어서 나오는 신음을 막느라 이를 악문다. 잘근거리는 게 정말 피라도 빨 셈인가 기가 막혀서 어슷하게 내려다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마주 바라본다. 이내 슬쩍 입을 뗀다.

“이제 나오는 것만 먹을 거니까 안 아플…걸.”
“꼴에 미안하냐? 이 또라이 새끼 진짜.”

불편한 자세나 어떻게 하자고 바둥거리자 순순히 놔준다. 한숨을 푹 내쉬곤 등을 돌려 앉았다. 피 맺힌 어깨가 드러나도록 옷을 당기곤 빨리 끝내라 퉁명스레 말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협조적이라, 무릎 꿇고 앉고도 잠시 머뭇거리다 흘러내리는 선혈을 길게 혀로 훑었다. 핥지 말라며 허릴 굽혀 피하려 들기에 팔을 둘러 바투하곤 상처 부위를 입으로 덮는다. 새지 않도록 이로 가볍게 물고, 눈을 감았다. 따뜻한 피가 설과 맞닿은 곳에서 샘솟았다. … …

“야! 땡전!”

헉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동시에 넘어 들어온 피가 기도로 흘렀는지 연신 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지혈할 셈인지 옷을 댄 채로 어깨를 누르며 천둥도 일어선다.

“이제 좀 정신 돌아오냐? 미친놈이 갑자기 피는 왜 먹겠다고…”

자신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는 말투가 작게 성질을 건드렸으나 넘어간다. 피 묻은 입가를 닦아내곤 힘껏 주먹을 내질러 수갑을 부쉈다. 아예 마시는 날을 늘릴 생각을 하다가, 툭툭 털고 걸어가는 놈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다음엔 데워서 먹어볼까.










*


“허리 아파…”
“어디가?”
“물 가지러 간다, 개자식아.”

저게… 눈매가 날카로워졌다가 제가 한 짓이 있어 혀나 찬다. 곧 냉장고 쪽에서 질문이 들린다.

“이게 뭐야?”

침대에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천둥을 봤다. 품이 남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혈액 백을 들고 있었다. 이번엔 땡전이 의아해진다.

“보면 몰라?”
“아니, 집에 이런 게 왜 있냐고.”
“마시니까?”
“이걸? 피?”

이제 와서, 고개를 끄덕이자 경악한 시선이 혈액 백으로 향한다.

“너 뭐… 중2병 그런 거야? 사탄 믿고?”
“뭔 개소리야 진짜. 키즈 된 부작용이라고. 그때 말을 어디로 들은 거야?”
“안 들었지! 약에 취한 놈이 되는대로 지껄이는 걸 하나하나 믿고 있겠냐?”
“그런 약 아니었다고 멍청아!”

언성 높은 대화는 천둥이 물을 마시기 시작하며 일단락됐다. 목을 축이는 동안에도 손에 든 빨간 액체를 빤히 보는 게, 고개를 기울였다가 하나 가져오라 시킨다. 투덜대면서도 넘겨주기에 흘러넘치지 않도록 뜯어 침대에 걸터앉는 천둥에게 도로 건넸다. 익숙한 피 향이 퍼지는 동안 크게 뜬 눈과 마주한다. 입을 달싹거리다 푹 한숨을 쉰다.

“넌 이상한데서 눈치가 빠르더라.”
“먹어보고 싶은 거지?”
“궁금하긴 한데…”

조심히 받아들고 침음을 흘리는 놈을 가만 바라봤다. 아주 길지 않게 고민을 끝내곤 홀짝 입에 머금는다. 바로 삼키는 게 좋았을걸. 급속도로 안 좋아지는 표정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거동이며 삿대질해가며 웃다가, 멱을 당겨 입을 맞췄다. 저가 더 고갤 낮춰 비틀어 갖다 대자 망설이다 입을 연다. 그새 체온으로 덥혀진 피가 흘러들어왔다. 말 그대로 물기 어린 키스를 나누다 떨어진다. 입가를 훔친 천둥이 혀를 빼꼼 내었다.

“비려.”

굳이 부정하지 않고 마저 웃고는 남은 것을 입에 댄다. 처음 맛본 게 송장 피라 대부분 평범하게 맛있었다. 무상히 목울대 너머로 넘기고 있자니 꾸물꾸물 기어와 사람을 베개로 쓴다. 어이가 없어서 시야에 놓인 머리를 헝클었다. 얌전히 손길을 받으며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앞으로 너가 물 때마다 경계할 것 같아.”
“언제는 안 그랬다는 것처럼 말하네.”

드러난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키득이는 소리가 들렸다.

“피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