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

[비돌조] 조각글

myeolsi 2020. 8. 21. 03:56

격조한 오랜 연과 회포를 풀고 있었다. 완성된 도시를 내려다보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다, 잠시 말이 없어진다.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정적을 천둥이 먼저 깼다.

"근데 진수."

그...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손을 꼼지락댄다. 따라서 함께 시선을 내렸다가 픽 웃었다. 할 말 못 할 말, 해야 할 말 하면 안 될 말 칼같이 구분하는 놈이 운 띄워놓곤 왜 입을 닫아? 이 영리한 멍청이가 이럴 땐 듣는 게 좋았다.

"뭔데? 말을 꺼냈으면 물리지 마라."

부추기는데도 퍽 망설인다. 챙 밑에서 눈썹이 휜다. 조용히 기다리자, 곧 결심한 듯 고개를 든다. 위태로운 눈빛에 상체를 더욱 기울여 사이를 좁혔다.

"너도... 너한테도 찾아오냐?"

잠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누가?"

그러자 실언을 했다는 듯 얼굴을 우그러뜨리며 웃는다. 뇌리에 상존하는 이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너..."

단어를 고르고 고르다 한숨을 내쉰다. 야단맞는 아이처럼 주눅 든 녀석을 손등으로 툭 쳤다. 뭘 기가 죽고 그러냐.

"꿈에서도 나오지. 헛것도 봤고."

그러나 인정하고 정리해두었다. 친구를 잃는 아픔은 겪어봤으니. 환영은 다시 봐서 나쁘지 않다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 되었다. 환청은 모습을 떠올리며 귀를 기울이면 되었다. 추억으로 미뤄버리면 버틸 수 있었다.
천둥은 할 이야기가 남은 듯 입을 달싹거렸다. 기다리는 동안 진수가 먼저 말을 이었다.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도 찾아왔었냐?"

눈을 동그랗게 뜨곤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며 답한다. 꺼져 들어가는 음성에 상처투성이인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새끼, 노력한다.

"너도 왔었지."

열리던 진수의 입이 다급히 이어지는 말에 도로 닫혔다. 조절을 잘못해서 끊어져 버린 문장이 뒤따라 나왔다.

"근데, 근데 럭키, 는."

불안하게 흔들린다.

"좀, 너랑은 다르게, 그게..."
"천천히 말해."

담배를 꺼낼까 고민한다. 횡설수설 말문이 트인다.

"다들, 찾아왔었는데. 그, 나도 아니까. 모를 수가 없으니까... 진짜가 아니라고. 계속 되뇌니까, 어느 순간부턴 안 만, 안 보게 됐는데. 럭키는..."

숨이 가빠오는지 색색 댄다. 무언으로 어깨를 감쌌다. 움찔 몸을 떨곤 겹쳐온다. 꽉 힘을 주어 잡는다. 뱉어내듯 끝맺었다.

"럭키는 계속 있어."

처음은 납득이었다. 자기 탓이라 읊조리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했다. 곧 의문이 된다. 그렇다고 럭키만? 타이거의 부고를 듣곤 살아남겠다는 집념도 뒤엎고 달려들었던 녀석인데. 마지막으로, 작게 소름이 인다. 차갑게 식은 손을 쥐고 내렸다.

"지금도?"

대답 대신 눈동자가 등 뒤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