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천] 기연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됐다. 이례적인 존재인 키즈 중에서도 특이한 형질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낮에는 힘을 못 쓰다시피 하지만 밤이 되면 여느 키즈보다 강해지는 자가 있는가 하면, 물이 폐를 적시면 곧 수중활동에 적합하게 몸이 변하는 자도 있다고 한다. 전자는 ‘뱀파이어’, 후자는 ‘인어’라는 이명이 붙어 소문이 퍼졌다. 성장이 멈춘 어린아이가 그런 능력도 갖추고 있다, 라. 지하의 변태들이라면 열광하지 않을 리가 없는 유언비어였다.
“쯧…”
담배꽁초를 발로 짓이긴다. 낡은 창고를 노려봤다. 불법으로 키즈를 거래하는 곳이었다. 인신매매, 그것도 주로 아동을. 쓰레기보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핸드폰 화면에 불빛이 들어온다. 새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여 빨아들이곤, 길게 내쉰다. 즐거운 급습의 시간이었다.
*
화상으로 진행되는 경매장이었기에 실거래자는 잡지 못했지만, 일단 수족은 잘라냈다. 그 치들을 추적하는 건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건성으로 넘기고 있으려니 패거리의 두목이 끌려나가며 바락바락 악을 써 댄다.
“이번 물건이 어떤 거였는데! 그걸 어떻게 잡았는데! 하루만, 아니 이틀만 더 늦게 오면 어디가 덧났냐 이!”
듣기 싫은 신세 한탄은 턱주가리가 높게 차인 탓에 끝맺어지지 않았다. 제 키가 훌쩍 넘도록 찢어 올라간 다리 각도를 따라 저 멀리 날아간다. 숨 쉬는 것도 짜증 나는데 말까지 해대니 살심이 끓어 영 참기 힘들었다.
“안 죽었을 테니까 끌고 가.”
잡혀 온 아이들이나 살펴볼까 안쪽으로 발을 옮겼는데, 어째선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의문을 품으며 뒤처리 담당이 모여선 곳으로 향한다. 두런대는 잡담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진짜야?”
“몰라, 나도 처음 봤어.”
“그치만 쟤,”
물속에서 숨을 쉬고 있잖아.
눈썹이 기울어진다. 구두 소리에 화들짝 뒤를 돌아본 이들이 약속한 듯 양옆으로 갈라진다. 그 묘한 기류를 눈치채지 못한 놈 하나가 바닥에 엎어진 채로 조잘댄다.
“아래에선 이쪽이 안 보이나 봐. 특수 유린가?”
바닥에 유리라. 옆에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자, 새까만 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주 엎드려야 뭐가 보일까 말까 할 정도로 어두웠다.
“뭐가 보이냐?”
기대와 달라 퉁명스럽게 묻자 녀석이 고개를 들고 양껏 흥분한 목소리를 낸다.
“인어가 있어!”
그리고 그 자세로 굳는다.
“아… 아뇨, 있어요. 있대요…”
얘들은 맞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리 겁먹는 건지. 무릎을 펴고 일어선다.
“쟤네가 말해주든?”
얌전히 끌려가는 범죄자 일당을 어깨 너머로 가리킨다. 꿀꺽 침을 삼키곤 끄덕이길래 비웃음을 흘리며 담배를 꺼내 필터에 끼웠다.
“그거 거짓말이야. 그럴싸하게 만들어 놓곤 비싼 값에 넘기려고. 어차피 실제로 보러 오지도 못하는 거, 약으로 재워놔서 안 움직인다 한마디면 끝이지.”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주변에서 작게 속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여즉 바닥에 붙어있는 놈의 목덜미를 잡아 든다. 남은 손으로 라이터를 켰다.
“그러니까 가서 일이나 해라.”
*
사람이 죄다 빠져나간 창고는 스산하리만큼 조용했다. 통제실에서 잠시 그 정적을 맛보다 녹슨 레버를 당겼다. 후미진 구석에서 미약하게 푸른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압수한 메모대로 안전커버를 열고 스위치를 누르자, 육중한 철이 서로를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간다. 단순한 눈속임이라기엔 수상한 점이 많았고, 무엇보다 들여다보던 놈의 말이 못내 걸렸다.
‘이쪽이 안 보이나 봐’
마치 수조 속 무언가가 눈을 뜨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을 재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지 컨셉에 충실한 걸까? 인어니까 물고기처럼 눈꺼풀이 없을 거다? 비소를 흘렸다. 만약 진짜라면, 정말로 ‘인어’가 있다는 것이 세상에 퍼지게 된다면 그런 키즈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가 물고문을 당할지 불 보듯 훤했다. 마네킹 혹은 잘 꾸며진 시체가 기다리고 있겠거니 기대처럼 생각한다.
유리 바닥이 사라진 곳엔 가로세로 폭 2m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수조를 전부 밝히기엔 턱없이 적은 수중등이 한쪽 구석을 밝히고 있었다.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꽤 깊어 보이고… 시체였군. 담배를 꺼낼까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물에 들어갈 테니 그만둔다. 방독면을 벗고 무겁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대는 잔물결에 따라 조금씩 흔들렸다. 물귀신 같아 보이네. 세로로 서 있고. 낚싯줄로 묶어놓았겠거니 싶어 마침 주변에 놓여 있던 공구용 커터칼을 챙겼다. 풀석 자켓을 내려놓았다. 구두와 양말도 가에 벗어 두곤 뒤돌아 조끼 단추를 푸는데, 턱 발목을 잡힌다. 놀랄 틈도 없이 그대로 당겨져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에 감긴다.
몸 주위로 공기 방울이 부글거렸다. 코에 물이 들어가 매웠다. 간신히 눈을 뜨자마자 어깨를 강하게 잡아 눌러졌다. 바닥으로 끌고 갈 심산이군. 일렁이는 시야에 동그란 청안 두 쌍이 들어왔다. 급한 김에 자유로운 양손으로 콱 목을 잡았다. 잡고, 양껏 힘을 줬다. 어깨를 누르던 손이 제 손을 떼어내려 겹쳐졌다. 그러나 힘에선 자신이 더 우위였다. 잠시 그런 대치를 하고 있자, 뭔가가 제 옆구리를 강하게 쳤다. 손아귀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놈이 빠져나간다. 어딜.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붙잡는다.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이 크게 벌어졌다. 다리가 아니라 지느러미였다. 매끄러운 비늘이 손끝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물의 저항력을 무시하는 듯한 힘으로 제 손을 쳐낸 지느러미가 상대의 허리께에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땡전은 인정했다. 인어였다. 동시에 몹쓸 호기심이 든다. 물속에서, 누가 더 강할지. 보는 이로 하여금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웃음을 입가에 띄운다. 물을 휘저어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뭔가가 상체를 감싸더니 훅 조여왔다. 숨이 울컥 터져 나왔다. 뒤를 돌아보곤 경악한다. 뭐, 뭐가 이렇게 커?
*
[죽이지 말아봐!]
당연히 저들을 납치한 놈들이겠거니 공격했는데, 반응이 이상스러웠다. 물속이라 목숨으로 흥정도 못하고. 답답하네. 점보에게 잡혀서 버둥대는 남자를 어쩔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는데, 슬슬 숨이 차는지 낭패라는 얼굴이 된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수면을 올려다봤다. 왜 아무도 구하려 들지 않지? 왜 우리를, 자신을 보고 그리 놀란 표정을 지은 걸까?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분하다는 듯 표정을 구긴다. 아직 살만한가 보네. 꼬리로 물살을 갈라 순식간에 물낯에 닿는다. 빼꼼 고개를 내밀자, 썰렁한 건물 내부가 보인다. 대충 정리된 구두와 정장 자켓도. 스스로 들어온 건가? 점점 알 수가 없어져 도로 몸을 물린다. 되돌아간 수조 바닥엔 아직 졸려 보이는 점보와 축 늘어진 놈이 있었다. 툭툭 건드려보다 물 위로 끌고 올라갔다. 혹시나 해 가슴팍에 귀를 대본다. 집중하지 않아도 심음이 들릴 정도로 사방이 고요했다. 머리를 떼어내는데 뒷목을 잡혔다. 놀라서 저도 상대의 목을 그러쥐었다.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 숨을 가다듬더니 토해내듯 말을 뱉는다.
“방금, 방금 뭐였냐.”
“뭐가. 점보?”
“점보?”
“내 파트너?”
“걔도 키즈인 거냐? 왜 그렇게 큰 건데?”
“우리 점보가 좀 크지. 그것보다 너 누구야?”
숨이 돌아왔는지 길게 한번 내쉬곤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너 같은 놈들 구해주러 온 사람.”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제 꼬리를 곁눈질한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참방거린다.
“살려준 은인의 비밀을 떠벌리고 다니진 않을 거지?”
“은인은 무슨… 딱히 기절했던 것도 아니거든.”
일어나려는 녀석의 팔을 끌어당겼다. 훅 가까워진 멱살을 잡고 목에 커터칼을 들이댔다.
“말, 안 할 거지?”
언제 가져간 건지. 가벼워진 바지 주머니를 힐끗 내려다보곤 푸른 눈을 마주했다.
“안 해. 사람 물린 것도 나야.”
“어디 높은 사람인가 봐?”
“신도림의 현상금 집행관이다.”
신도림의… 표정이 기묘해진다.
“뭐야, 수배라도 당했어?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아니. 그럼 닦을 거랑 입을 것 좀.”
커터칼을 내리고 뻔뻔하게 말한다. 기가 차서 그저 웃었다. 수조 가에 완전히 몸을 올리곤 지느러미에서 물을 털어내던 인어가 흘낏 눈짓한다.
“구해주러 왔다면서. 열쇠는 없어? 점보는 묶여있단 말이야.”
“뭔… 아.”
통제실 벽에 걸려있던 열쇠를 기억해낸다. 자물쇠가 걸린 함 안에 들어있었지만, 까짓거 부수면 되겠지. 그 옆에 있는 로커에 옷이 들었을 수도 있고. 물먹은 정장 조끼를 벗고 맨발로 구두를 신었다. 그러다 팍 인상을 썼다.
“뭘 당연하다는 듯이 명령하는 거야?”
“명령은 무슨. 부탁하는 거잖아. 납치 사건 피해자를 위해 한 번만 힘 써주셔, 집행관 씨.”
그게 부탁하는 자세냐.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이는 인어를 쳐다보다 돌아섰다. 이상하게 아주 화나지는 않았다.
대여섯 개 정도의 열쇠가 꿰어진 꾸러미와 걸레인지 수건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천 쪼가리를 찾아낸다. 옷은 보이지 않았다. 열쇠나 넘기고 슬슬 돌아갈까 싶어 수조로 걸음했다.
“…뭐하냐.”
인어는 자신의 자켓을 두르고 물속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비늘이 남아있는 다리가 언뜻 보였다. 고개를 들어 푸르르 머리를 턴다.
“점보한테 상황 설명. 열쇠는?”
“자. 옷은 없어.”
“흠… 그래. 고마워.”
열쇠 묶음을 잠시 바라보다 물속으로 던져버린다. 머리도 뒤따라 집어넣는다. 반쯤 잠긴 아가미가 뻐끔거리는 게 보였다. 이내 물을 뚝뚝 흘리며 목을 핀다.
“됐냐? 자켓 내놔. 이제 가게.”
“뭐? 좀만 더 기다려. 옷 찾아올 거야.”
건네받은 천을 대충 하반신에 두르고 일어섰다. 집행관이 뭐라 입을 열기 전에 자리를 뜬다.
“자켓 고마워~”
뒤에서 욕지거리를 해대는 걸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다루기 어려운 놈은 아니어서 좋네. 사흘 만에 다리로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을 대신해 잡힌 후 내내 수조에 갇혀있자니 사람의 발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까먹을 지경이었다. 물에 푹 절은 에너지바 맛은 또 어떻고. 다시 생각해도 뭣 같아 진저리를 친다. 창고를 대충 둘러보곤 여기 있겠거니 거대한 쓰레기통을 열어젖혔다. 빙고. 뿌듯함에 차 점보와 제 옷을 끄집어내다 그 아래에 가득 쌓인 옷가지들을 보고 슬 기분이 가라앉는다. 이곳으로 몇이나 끌려온 걸까. 짧게 감상에 젖곤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강한 녀석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지옥의 강함은 상대적인 의미가 강했으니, 강자의 존재는 곧 약자의 잔존을 뜻했다. 약자. 지옥. 보호. 도시… 어슴푸레 이상향을 떠올린다.
*
되돌아간 수조 앞에 집행관이 쪼그려 앉아있었다. 옆구리에 방독면을 끼고 있었다.
“점보는?”
맞는 열쇠가 없었나 미간을 좁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을 한다.
“풀었어.”
“근데 왜 눈싸움 중인 건데?”
다가가서 약간 젖은 자켓을 건넸다. 별 말 없이 받아든다.
“쟤 물에서 더 강해지고 그러냐?”
“뭐? 잘 모르겠는데.”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지 담배를 뻑뻑 피워 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점보에게 팔을 흔들었다. 그제야 헤엄쳐 올라온다. 옷과 닦을 것을 넘겨주곤 집행관을 돌아봤다.
“안 가? 점보 옷 입는 거 구경할 거 아니면 가는 게 좋을걸.”
“너네 인어인 거냐?”
엉뚱한 질문이 돌아온다.
“인간인데. 안 갈 거면 나 배트 찾는 거나 도와줘.”
옷을 찾은 부근으로 걸음을 돌렸다. 뒤따라오는 구두 소리가 들렸다.
“키즈가 된 후에 그렇게 된 거라는 거지?”
“어.”
쓰레기통 옆에 있던 박스를 열어보았다. 수갑과 열쇠가 즐비해 도로 닫았다.
“그럼 ‘뱀파이어’도 있어?”
“몰라. 손 좀 빌려주지?”
뻑뻑한 컨테이너 문을 낑낑대며 열고 있으니 비켜서게 한다. 같이 당기면 될 것을 왜… 쾅, 하고 철제문이 찌그러진다. 눈을 동그랗게 뜨자 마주 본 눈도 동그래진다.
“그러고 보니까 너 눈 색이 변했잖아?”
“어… 어. 변하면 파래지더라고.”
가까이서 보려는 듯 얼굴을 바투하기에 기겁을 하고 치워낸다. 함께 컨테이너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근데 뭐 찾는 거라고?”
“배트. 알루미늄 배트.”
“이거?”
제 배트를 보고 반가워서 빼앗아 든다.
“어 이거! 고맙다 야.”
기뻐하는 인어를 무언으로 바라봤다. 담배 연기를 머금었다가 작은 틈을 만들어 내보낸다.
“그 체질 안 들키게 조심해. 세간이 알면 비단 네 문제만이 아니게 될 거다.”
미소하느라 벌어졌던 입을 닫고 서로를 응시했다.
“나도 알아.”
굳이 길게 변명하지 않았다. 과정이 어쨌건 제가 선택해 사람 앞에 드러냈으니까.
집행관은 그대로 창고를 떠났다. 손을 동그랗게 모아 입 앞에 대고 잘 가라 소릴 질렀다. 좋은 인상을 남겨서 나쁠 일은 없었다. 도로 컨테이너로 들어와 잡동사니들을 뒤졌다. 사흘이나 가뒀으니 털어가야 공평하겠지.
*
창고 문을 닫고 방독면을 썼다. 이마에 핏대가 돋았다. 창고 측면을 따라 큰 걸음으로 걸어가 귀퉁이를 돌았다.
“야.”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놈 봐라?
“뒤질래? 안 나와?”
쌓여있는 박스 사이에서 주춤거리며 인영이 나타났다. 아까 바닥에 붙어있던 새끼였다. 희뿌연 연기가 공중으로 피어올랐다. 호기심은 유구하게 사람을 죽여왔다. 바꿔 말하자면, 힘 없는 놈이 뭘 궁금해할 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법이었다.
“여태 거기서 뭐했어?”
대답하지 못한다.
“다르게 물어볼까? 뭐 봤어?”
침묵한다. 낮게 웃었다.
“오늘 일 관련해서 인어의 인 자라도 나온다면, 앞뒤 따질 것 없이 너부터 족칠 줄 알아.”
“그, 그런…”
눈을 치켜뜬다.
“왜, 안 돼? 여기서 죽을래?”
또 입을 다문다. 인생 참 편하게 사는 새끼였다.
“앞장서. 임무 다 끝나고도 지상에 있어? 제정신이냐? 남아도 된다고 허가한 거 누구야?”
앞장서라 말은 했지만 분에 겨워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간다. 창백해져서 몸을 떠는 게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죽이면 되레 의아하게 여겨질 터였다. 창고를 일별했다. 멍청한 놈은 아니었으니 어련히 잘하겠지. 납치까지 당했으니 한동안 몸을 사리거나, 아예 새로운 지역으로 떠날 가능성도 높았다. 이거 하나 살려둔다고 문제가 되진 않을거라 치부했다. 다시 볼 일 없을 테니까.
*
“여! 집행관 양반!”
밝게 웃는 소년을 보며 땡전은 이마를 짚었다. 그날 바로 징계 먹이고 다른 부서로 보내서 다행이었다.
“너… 얌전하게 살라는 말 이해 못 했어?”
“돈이 많이 필요하게 돼서. 이거나 받아줘.”
곤죽이 된 현상범을 들이민다. 별수없이 계좌에 돈을 넣는다. 자연스럽게 예금주명에 눈이 갔다. 천둥.
“땡전 너만 비밀로 해주면 돼.”
타이밍 좋게 제 이름을 부른다. 생각을 읽힌 듯해 속으로 움찔한다.
“내 이름은 어디서 알았어?”
“뭘. 신도림의 현상금 집행관하면 다들 알던데.”
사실 히터에게 들었지만. 서글서글 웃어줬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여러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