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천] 어떤 날
럭키도 진수도 만나기 전의 이야기
"이런..."
일하러 나가려는 데 코드를 켜 놓지 않은 것인지 핸드폰 충전이 안 돼 있었다. 되어있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켜지지도 않았다. 혹여 고장이라도 난 걸까 허둥지둥 충전기를 꽂자 불빛이 들어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곁에서 점보가 기웃거렸다. 턱을 감싸고 고민하던 천둥은 이내 답을 내놨다.
“잡고, 네가 감시하는 동안 내가 폰 챙겨서 땡전한테 가자. 어때!”
“점보.”
완벽한 계획이야. 천둥이 호탕하게 웃었다.
*
그리 비싼 놈은 아니었다. 군수물자를 빼돌려 반쯤 무너진 건물을 본거지로 세력을 키운 흔한 무장단체. 복잡한 내부 구조를 이용해 기습해오는 방식은 상당히 괜찮았지만, 키즈의 초인적인 힘 앞에선 무용했다. 튕겨 나가는 총알에 맞춰 쓰러지는 부하들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우두머리는 영리하게도 도주를 택했다. 그게 국대 배터리를 상대로 펼치는 도주극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죽지 마라! 끌고 가기 배로 힘들어진단 말이야!”
시속 300km를 넘는 투구를 준비하며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난사된 총기탓에 균열이 심해진 천장이 무너져 방패막이 되어주었다. 피어오르는 분진에 연신 기침을 하며 천둥이 짜증을 냈다. 운도 좋은 녀석이었다.
“점보, 먼저 나가 있어. 저 미꾸라지 같은 놈 잡고 바로 나갈게.”
“…”
점보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지만,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안 그래도 좁은 통로가 떨어진 파편들로 이곳저곳 막혀 있으니 점보가 지나다니기엔 불편하고 또 느릴 터였다. 점보의 팔을 툭툭 친다.
“얼른 올게.”
배트를 고쳐 잡고 천둥이 달려 나갔다. 우두커니 서 있던 점보도 이내 계단을 내려갔다. 천둥이 달려간 방향의 바깥쪽에서라도 서성거려볼 생각이었다.
*
“이, 이 괴물 자식아!”
학습 능력은 있는지 총을 겨누기만 하고 쏘지 않는다. 비웃음을 흘렸다.
“키즈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이래. 얼른 나가자고. 난 방독면도 없어서 숨쉬기도 힘들다, 야.”
“너는 신도림에 잡혀 들어가면 무슨 짓을 당하는지 몰라서 그래!”
눈썹을 씰룩였다. 왜 저래 진짜? 감옥에서 썩는 게 그렇게 싫으면 현상수배를 당하질 말던가. 뭐라고 악을 써대는데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원하는 만큼 떠들어라. 금이 간 벽을 보며 배트를 들었다. 놈의 탁한 눈에 어떤 결심이 스쳤다.
“…그럴 바엔 그냥 여기서 죽지!”
“뭐,”
말릴 새도 없이 품에서 꺼내든 버튼을 누른다. 충격이 몸을 감쌌다.
세상이 암전했다.
*
터지고 붕괴하는 소리에 땡전이 고개를 돌렸다. 또 어떤 놈인지. 폭발 정도는 종종 단순 사고로도 일어나는 터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 마려운 개처럼 기다리는 놈에게 현상금 액수만큼의 돈을 넣었다. 핸드폰 화면을 보며 좋아라 입을 찢는다. 이런 단발성 현상금 사냥꾼은 후일 범죄자로서 다시 보는 일이 흔하디흔했다. 돈만 된다면 범죄도 불사하는 쓰레기들. 역겨워서 담배를 꺼내 필터에 끼웠다.
“입금 확인했으면 꺼져.”
혐오감을 지우지 않은 말투에도 익숙하다는 듯 자리를 뜨는 사냥꾼을 보며 혀를 찼다. 잠시 뜸을 들이다 역으로 돌아가서 대기할까 싶어 발을 돌리는데, 익숙한 거구가 폭발의 근원지 쪽에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점보?”
웬일로 혼자래. 자신을 눈치채지 못한 건지 조금 떨어진 곳을 지나치는데, 팔에 지우다 만 피가 달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사람의 손으로 쓸려 닦인 자국이었다. 점보보다 작은 손으로. 무의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를 찾는데 몇 초 몇 분이 지나고도 나타나질 않았다. 불길함이 등을 타고 기어올랐다. 담배를 발로 짓이겼다. 아니지. 굳이? … …아니, 씨.
점보가 나타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속도가 붙어 종내엔 뛰는 꼴이 된다. 별 안 좋은 상상이 다 됐다. 알게 뭐람, 그런 현상금 사냥꾼 한 명쯤. 건물이라 부르기도 뭣한 폐허가 즐비한 곳을 살피고 있으려니 위화감을 느낀다.
여기, 무너져있었나?
숨을 가다듬으며 그 근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작게 콜록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직하게 이름을 불렀다.
“천둥?”
적막에 잠겼다.
방독면 때문에 잘 안 들리나?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벗어 크게 한 번 더 외쳤다.
“천둥?”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발을 옮기려는데 의아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들렸다.
“...땡전?”
눈이 크게 뜨였다.
“천둥 어디냐?”
“뭐야, 어떻게 알고 왔어?”
“묻는 말에나 답해! 어딨냐고?”
“어... 와서 뭐 하게.”
“아니 씨!”
자신도 몰라서 짜증이 난다. 목소리가 건물 잔해에 울려 전해져 와서 정확한 위치를 잡기 어려웠다. 잠시 되지도 않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 탓에 서로 헉헉대는 소리만 흐른다.
“넌 진짜 그 별것도 아닌 거에 빡치는, 윽,”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고통을 섞은 신음이었다. 얼굴을 구겼다. 다친 게 분명했다. 입을 닫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바람도 불지 않는 조용한 밤이었다. 달그락하고 소리가 났다. 곧장 향한다.
“천둥?”
“감도 좋지.”
천둥은 거대한 콘크리트 조각 위에 뻗어 있었다. 턱을 하늘로 들어 거꾸로 자신을 쳐다보는데, 드러난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철근 두 개가 얇은 종아리를 꿰뚫고 있었다.
“이야... 이렇게 될 줄은 몰랐거든.”
웃음이 나는지 천둥이 낄낄댔다. 뭐라 반응하지 않고 다가가 다리를 살펴봤다. 상처 부위가 막혀 있어 출혈은 덜했지만, 도저히 괜찮은 상황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길게 이어지는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천둥이 먼저 입을 뗐다.
“점보가 부수기엔 좀 위험해 보여서 철 자르는 걸 가져와 달라고 했어. 아, 그것보다 저~쪽에 있는 무더기 밑에 현상 수배범 하나 깔려 있는데. 이따 확인하고 돈 좀 넣어줄래?”
조잘대는데 딱히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이대로 쇠를 자르겠다고? 뼈가 상하지 않나? 잠시 천둥을 내려다봤다. 대답이 없자 뻘쭘해졌는지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도와주기에도 안 도와주기에도 이유가 없었다. 고민하다 사람 도와주는데 이유가 있냐는 쪽으로 기운다. 거의 변명이었다. 어깨를 기울여 천둥에게 팔을 뻗었다.
“응? 뭐야?”
“잡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천둥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장갑을 벗고 있는 오른손엔 피가 말라붙어있었다. 점보 팔에 묻어 있던 혈흔이 떠올랐다.
“나 손 더러워. 보다시피 여기 먼지투성이라.”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이 녀석도 쓸데없이 변명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됐으니까 잡는 게 좋을걸.”
의문을 가지면서도 순순히 팔을 뻗는가 싶더니, 옷자락만 슬쩍 잡는다. 목의 핏대가 꿈틀거렸다.
“양손으로 꽉 잡으라고!”
“대체 왜?”
“좀 말 좀 들어 새꺄!”
모여있는 양손을 한 손으로 냅다 채곤 주저 없이 발을 들어 내리쳤다. 천둥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미!”
콘크리트가 쩍 갈라졌다. 무슨 재주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쪼개지기만 한다. 그에 따라 철근이 동강났다. 비명을 삼키며 땡전의 손을 목숨줄인 양 그러쥐었다. 철근이 흔들리는 충격이 다리를 통해 온몸으로 퍼졌다.
손에서 느껴지는 근육의 수축과 빠르게 뛰는 맥이 마음에 들었다. 스스로 정신이 어떻게 된 건 아닌지 잠시 생각한다. 별개로 깔끔하게 잘린 철근이 만족스러웠다.
“됐냐?”
아픈지 몸을 웅크리며 바르작거리는 천둥을 살폈다. 꽉 잡은 손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러고 한동안 미동조차 없기에 슬그머니 걱정이 들었다.
“야. 기절했냐?”
이 정돈 버틸 줄 알았는데. 반대쪽 손을 뻗어 천둥의 눈을 덮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괜…”
“아프잖, 아, 미친놈아…”
말을 하라고...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잠시 말을 잃는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낸 천둥이 도로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 빌려줘.”
“어, 뭐?”
“점보한테 얘기해야 할 거 아냐! 지나가던 또라이가 냅다 부숴서 절단기 필요 없다고.”
이 새끼가 도와줘도. 그러나 더 모질게 말하지는 못하고 순순히 건넨다. 통화음이 이어졌다.
“응. 난데, 점보 있어? 자르는 거 안 가져와도 된다고 해 줘. 어 괜찮아. 올 때 되면 진통제 좀. 어…”
핸드폰 너머에서 누군가가 성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천둥이 핸드폰에서 멀찍이 귀를 뗐다가,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는다. 야구 연습 중에 넘어진 것뿐이라나 뭐라나.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친다.
끊고 한숨을 내쉬는 천둥에게 다가갔다. 통화기록을 지우는 게 보였다.
“현상금 사냥꾼인 거, 몰라?”
“...”
“...”
침묵을 택한 천둥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굳이 더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다리를 죽 끌어서 정돈하는 천둥을 보며 마음에 없었으면 하는 말을 꺼낸다.
“데려다줄까?”
미워할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무슨 감정을 담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아니. 네 뭘 믿고 우리 집을 알려줘?”
“소재도 모르는 그지한테 듣고 싶진 않네.”
천둥은 기력이 없는지 말수가 점차 줄었다. 그리 지나지 않아 점보가 왔다. 후들거리면서도 현상금을 확인한 천둥을 점보가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저도 자리를 뜨려는데 천둥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불렀다.
“야.”
돌아보자 천둥은 눈을 감고 있었다.
“고맙다.”
“…”
답 없이 발을 옮겼다. 가죽 장갑을 낀 손에 희뿌옇게 먼지가 남아있었다.